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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1세기 예술의 조류를 읽다
  • 기사등록 2013-01-31 2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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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1세기 예술의 조류를 읽다

 

‘대중성’, 금세기 화두로 자리하다

다시 돌아온 팝아트(Pop Art)의 전성시대

 

21세기 예술의 패러다임은 ‘컨버전스(convergence)’다. 융합과 이종교배. 예술계에서는 ‘크로스오버’라는 표현을 벌써부터 즐겨 사용해 오기도 했다. 정통 예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질적 장르 간 교차를 통해 색다른 가치를 생성해내는가 하면, 낯설거나 전혀 다른 층위의 의미항을 지닌 대상들의 이미지 충돌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20세기 후반 폭발적 확장을 보여 온 개념인 ‘탈근대’와 더불어 ‘대중성’이라는 콘셉트와 일정 부분 친화력을 갖고 있다. 특히, 오랜 기간 정통 예술로부터 저급한 부류, 통속적인 층위의 ‘상품’으로 치부된 대중문화의 오브제(objet)들이 정통 예술의 제재로 활발히 차용되고 있기도 하다.

 

정통 예술에 대한 전복으로의 대중성

 

미국의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연구가인 러셀 네이는 ‘대중적’이라는 단어를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매체를 통해 ‘관습적으로’ 접하거나 즐길 수 있는 통속적이고 가벼운 오락물을 지칭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중성에 대해 정크(junk, 시시한 것)나 키치(kitsch, 저속한), 트래시(trash, 쓰레기) 같은 과격한 용어를 사용해 폄훼했던 부류도 있지만 기실 대중성은 현대 예술의 외피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대중적 요소들과 정통 예술 사이에는, 적절하게 유지되는 팽팽한 척력(斥力)에서 발생하는 의미심장한 심미적 긴장이 존재한다. 이는 정통 예술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온, 대중적 요소들로 만들어진 문화 산물들이 소위 ‘대중적’ 혹은 ‘통속적’이라 표현되는 자기 체험의 특성들을 배제하지 않고도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예술적 가능성들을 이끌어 낸 ‘작가’들에 의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서 러셀 네이의 지적대로 ‘대중성’이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무엇이라고 할 때, ‘관습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제도적 관습’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대중성’에 기초를 둔 문화 산물들은 정통 예술의 제도적 권위에서 소외되거나 수준 낮은 예술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고급 예술의 경계가 ‘대중적’인 것들로 확장하면서, 그 ‘대중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작가들과 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션버그, 로이 리히텐슈타인, 리처드 해밀턴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이끈, 이른바 ‘팝아트’가 그것이다.

 

필연적 조형양식, 팝아트

 

가장 미국적이며 이름 그대로 ‘대중성’에 방점을 찍고 시대를 비평하는 양식, 그 자체였던 팝아트는 1958년 1월 재스퍼 존스가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가지면서 출발했다.

팝아트가 출현하게 된 토양은 서구의 산업화와 대중화였다. 대량생산시스템에 의해 쏟아져 나오는 기성제품들이나 대중상품, 혹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이미지들이 단순한 상품으로서의 가치나 표층의 물적 차원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층위로 끌어 오르는 작업이 팝아트 작가들에 의해 시도됐다.

시스템으로 물신화된 현실을 새롭게 인식시켜주는 예술적 당위를 상정해 볼 때, 1950~60년대 미국의 사회구조 속에서 팝아트는 필연적인 조형양식이었다. 팝아트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만화나 라벨(label), 혹은 상표 같은 소재들은 표층적인 실재(實在)를 보여주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었다. 이 대상들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기성대중문화를 은유하는 ‘기호’로 작용했다. 팝아트는 본질적으로 이 ‘기호’와 ‘기호시스템’에 대한 예술이기도 했다.

팝아트가 흥행을 이룬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바로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주의 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팝아트는 미국적 물질주의 문화의 반영이며, 그 근본적 태도에 있어서 당대 물질문명에 대한 낙관적 사회분위기와 이에 대해 빈정대고 조소하는 소수 진보적 예술가의 시니시즘(cynicism)과 깊이 연결되어있다.

 

문화적 엘리티시즘과의 결별

 

수년 전 삼성그룹의 비자금 문제로 세간에 화제가 된 ‘행복한 눈물’의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팝아트 작가군 중 발군의 예술가였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오브제인 대중만화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미국적 스타일의 이상과 불안, 꿈 등 양가적 감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제시했다. ‘레디메이드’, 즉 상업적 기성품을 본래의 용도가 아닌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해 인식적 충돌을 유도하는 조형기법은 뒤샹으로부터 유래됐는데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이르러 기존 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그는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미키마우스 등 산업화된 미국사회 속에서 자생한 통속적 영웅들을 통해 동시대를 낭만적으로 풍자했고 비평했다.

“나는 만화를 너무 좋아한다. 그 이유는, 동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처럼 내가 이 문화적 산물을 몸소 겪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만화가 괄목할 만한 조형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고백처럼 만화적 상상력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게 최선의 무기일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지다시피 리히텐슈타인만의 독창적 조형기법은 ‘벤 데이법’을 사용한 망점의 재현과 진한 윤곽선을 차용한 만화적 양식의 표현이었다. 이는 추상미술의 표현주의적 기류에 대한 고발과 풍자이며 동시에 비꼼이다. 또한 그는 만화적 요소가 담긴 말풍선을 통해 대사나 의성어 및 의태어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삽입시켜 드라마적 요소를 강조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사실 오랜 서구 미술의 문화적 엘리티시즘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그 간격의 크기만큼이나 강렬하고 낯선 충격을 수용자들에게 던져주었다.

 

한 시대 되돌아 다시 자리잡은 ‘팝아트’의 후예들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비롯한 팝아트 작가군의 활동은 약 1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뤄졌지만 팝아트의 작품들은 이후 현대 예술의 각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팝아트는 추상화와 구상화에 모두 맥이 닿았지만 그렇다고 ‘추상’이나 ‘구상’ 모두는 아니었다. 팝아트가 지향했던 것은, 이러한 기계적 가름의 전선 위에서 권위와 엄숙주의라는 기존의 질서에 대한 위트 있는 조롱과 새 질서를 제시하는 전위적 이정표의 역할이었다. 팝아트는 정통 미술의 관점을 영화, CF, 만화, 삽화, 사진 같은 대중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그 범주를 확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온갖 대중문화의 장르들이 정통 예술의 아우라를 취할 수 있는 출구를 마련했다.

또, 현대문명의 대량생산과 소비 시스템 및 상품들 같은 일상의 ‘대중성’과 ‘통속적’ 대상들과의 미학적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팝아트는 큰 가치를 갖는다.

금세기 들어 ‘팝아트’가 예술의 각 분야의 트렌드를 견인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특히 자본과의 일정한 관계를 맺으려는 예술이 태생적으로 담보해야 할 열쇠말이 바로 ‘대중성’인 것.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급예술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보다 확장된 지평을 갖고자 했던 ‘팝아트’의 가치는 분명 시대적 요청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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