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희생하고 양보하는 소나무의 성품 한민족과 닮아있어 아그파인 윤석승 대표 - 9만m² 의 소나무 농장에서 3대가 가꾸어낸 자연의 생명력!!
  • 기사등록 2012-05-09 12:57:25
  • 기사수정 2012-05-09 12:57:27
기사수정

8만주에 이르는 다양한 소나무 농장
아그파인농장은 윤 대표가 80년 초반부터 산림관련 사업에 뜻을 두고 소나무 가꾸기를 시작해 다양한 소나무 종류만을 심고 가꾸어 온 것이 8만주에 이르며 규모면에서도 9만m² 의 드넓은 농장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를 가꾸고 키우면서 우리나라에도 소나무, 곰솔로 대표되는 소나무에서 많은 종류의 회귀변종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에 대해 문헌으로만 발표되고 실체가 없었던 소나무 종류(1927년 일본인 유에끼 교수 38종류 발표)를 찾아서 보존하고 가꾸어 보고 싶은 꿈을 키우고 희귀한 소나무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서 어렵사리 구해서 모아 지금의 소나무 농장을 이루게 되었다. 윤 대표는 먼저 나무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산림경영지도자 교육에 제 1기로 참석하여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사랑받지 못했던 삶을 위로한 나무
윤 대표의 소나무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8만주의 나무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무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존재이자  상처 입은 그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안식처였다. 시골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나 사랑받지 못하며 자라온 자신의 삶을 펼쳐놓던 그는 먹먹해지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무는 내 피땀이 스며있는 자식같은 생명들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고 하며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서 따뜻한 애정을 받지 못했던 윤 대표는 초창기에 농민운동을 했다고 한다. 한때 인정을 받기도 했던 그는 어느날 농업에 관련한 교육을 받고 80년대에 협업농협지도소에서 1기로 산림교육을 받았다. 그때였다. 나무라는 존재가 윤 대표의 마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 산림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나도 언젠가 내 손으로 무엇을 일궈봐야겠다.’ 윤 대표는 산림교육을 받으면서 불현듯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마음먹은 것을 시작하기에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나무를 심을 땅을 사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윤 대표는 고물장수도 하고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 임업기술을 익히던 차에 나무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던 윤 대표는 나무를 사다심어도 잘 자라지 못하고 죽게 되는 일들을 수차례 경험해야 했다. “속이 찢어지고 아팠다. 죽으면 뽑아내고 다시 심고 달밤에 잠도 안자면서 나무를 심고 죽은 나무를 뽑고.. ”라며 가슴 아픈 시간들을 보냈다고 전했다. 12년 전의 이야기다. 40대인 아들의 이런 행동을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 대표의 아버지는 차라리 고추나 깨를 심는게 낫겠다며 아들의 행동을 나무랐고 동네 어른들도 윤 대표를 향해 냉소를 퍼부었다.
윤 대표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정신팔린 놈이라는 소리도 들으면서 키워온 15년생 소나무들의 든든한 성장은 윤 대표에게 지나온 세월의 모든 것을 넉넉히 위로하는 벗이자 인생의 동행을 함께하는 반려자인 셈이다.
윤 대표는 그런 시행착오의 시간들을 거치면서 오기도 생기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나무에 대해 점점 더 깊은 지식이 쌓이고 어떤 토질에서 어떤 나무가 잘 자라는지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조예도 깊어졌다.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토질로 만들기 위해 현재 아그파인 농장에다가 3천 톤이 넘는 좋은 토질의 흙을 일일이 다 채웠다.” 윤 대표의 나무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두에게 자연의 혜택을 선물하는 소나무농장
아그파인농장은 전국에 나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윤 대표는 1년이면 2000명가량이 방문한다고 소개하며 “누구의 도움 없이 내가 어린 묘목을 직접 심고 길러왔다. 어떤 나무는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고 또 어떤 나무는 토양과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그 종류가 너무 많고 아름답다.”고 나무에 쏟은 오랜 세월의 감회를 내비쳤다. 윤 대표는 지금, 우리 토종나무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고민중이다. 회귀변이종들이 고사되기 전에 후계목을 만드는 연구작업도 바쁘게 진행하고 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으려면 3-5년이 걸린다. 그것을 접목하는 특허 신청을 해놨다. 상표등록 한 것만도 5개나 된다. 특허를 내고 상표등록을 굳이 하는 것은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고 산림업이 생산성있게 가야된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업인이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활용해도 좋지만 나무키우는 사람들이 너무 착하다보니 이를 상업화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특허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다. 나도 처음에 나무를 심으면서 많이 속고 당했다.”윤 대표는 평생 직장 다니던 사람들이 퇴직금을 날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며 시골에 땅 이라도 한 평 사놓으면서 가족과 하루만이라도 투자해 함께 자연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윤 대표는 그저 나무가 좋고 이일에 미쳐서 즐겁게 하고 있다면서 “하루 쉬는 동안 담배 세 갑을 피우지만 나무밭에 가면 하루종일 전혀 피우지 않는다.”는 말을 건넸다. 윤 대표는 나무들과 대화를 나눈다. 가지 하나로 인해서도 전체적인 흐름이 깨지기도 할 수 있어서 늘 세심하게 나무들을 살피고 있다고 했다.
나무에 대해 누군가 물어보면 나무를 심기 이전에 생각을 잘해야 한다며 “무슨 나무를 심을 것인가 참고만 해라. 중요한 것은 당신이 잘해야 한다. 좋은 것을 찾아서 당신 것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고 조언했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은데 마음 한 켠에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산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전국을 밤낮가리지 않고 돌아다닌다.”며 미팅을 갖고 좋은 수종이 있으면 선물도 받고 사다 심기도 하면서 나무 한 그루를 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던 시간들을 소회했다. 이제는 한 곳에 정보를 모아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문의해오면 알려주고 시간과 경비도 절약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혼자서만 소나무를 모아서 키우고 혼자 가꾸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의미있는 일을 찾다가 우연히 소나무 전문가들을 알게 되어 자문도 구하고, 또한 소나무를 취미로 수집하고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과도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특히 늘 옆에서 함께 해 준 국립수목원 권영한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그파인농장에서는 지금까지 모아온 소나무를 한 장소에 심어서 소나무 번식과 관리를 위한 교육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수집하여 보유하고 있는 소나무를 취미나 사업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사회적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교육장에서는 각종 마니아 모임, 소나무 재배농가, 산림조합직원 등 연간 1,500여 명의 견학과 기술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으로 동참해준 영농법인 들풀조경단 식구들에게도 늘 감사드린다. 황금소나무매니아(회원 1760명)모임 1회, 시동리소나무, (회원 4170명) 모임5회, 소나무 연구회 (210명)모임 3회를 실시하였고 ,소나무재배농가, 산림조합직원 등 연간 1500여 명의 견학과 기술상담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소나무 번식, 재배방법의 생력화, 과학화를 위한 꾸준한 연구개발에 정진하고 있다. 특히 윤 대표는 소나무에 대한 연구 열의가 대단해 광분해 비닐을 사용한 무성 번식 방법과 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소나무 묘목에 대한 특허출원과 아그파인황금송 등 상표등록의 성과도 맺었다. 특허의 성과는 나무접목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소나무 접목 방법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밀폐에 의한 접목으로 시기 2월 중 소요기간 2-3개월에 활착률 30% 이내인 것을 접목시기 3-8월이 가능하며 소요기간 50일 내, 활착율 70%까지 가능한 획기적 방법의 기술 보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나무하는 분들은 만나면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윤 대표는 나무의 고수들은 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며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노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놓은 것임을 강조했다.
“나무에 미쳤을 뿐이다. 나무가  좋아서 할 뿐이다.” 윤 대표는 진심어린 고백을 쏟아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자연공간
윤 대표는 앞으로 아이들이 맘 놓고 자연에서 뛰놀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아이들이 흙과 나무 사이에서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윤 대표와 함께 나무를 돌보고 있는 아들도 처음에는 나무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람은 못 믿어도 나무는 믿을 수 있다.” 며 나무 가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고관절의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의 위기도 이겨낸 윤 대표의 아내(김연자) 역시 윤 대표 못지 않은 열정으로 자연과의 사랑에 흠뻑 빠져 있다. 윤 대표의 아들(여진)과 자부(김항아)는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커나가길 바란다며 도시생활 대신 소나무 농장근처를 택했다. 나무사랑에 빠진 윤 대표의 가정환경은 어린 손자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윤 대표의 손자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무 20여종의 이름을 다 알고 들어갔고 나중에 크면 할아버지와 나무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손자손녀들이 소나무 사이에서 뛰어놀며 나무를 향한 따뜻한 정을 품고 자라가는 모습을 전하는 윤 대표의 얼굴에 흐믓한 미소가 가득하다.

 

산림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경종
윤 대표가 가장 화가 날 때는 나무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나무를 발로 차며 홀대하는 행동을 보이는 순간이라고 한다. “ 어떤 사람들은 나무를 걷어차며 몇 푼이나 가겠냐고 한다.” 작은 묘목을 사다가 피눈물 나게 키웠는데 나무를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보면 윤 대표도 참지 못하고 화를 폭발하고 멱살잡이까지도 했다고 전했다. 그만큼 나무에 대한 윤 대표의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윤 대표는 우리 사회가 나무 한그루의 소중함을 알아야한다며 식목일기념식수에 관해서도 소홀히 지나가는 무관심한 사회의식을 지적했다. “장흥의 편백숲, 목림가들의 기부 농장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모른다. 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성화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윤 대표는  자연은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나눠야 하는 대상임을 분명히 밝히며 “ 소나무는 한민족의 역사를 같이 해왔다.” 고 전했다. 

 

 나무를 키우는 일에 정직한 양심 걸어야..
 활엽수는 같이 자라다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성장이 느린 소나무는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며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다. “소나무의 이런 모습은 우리 한민족의 성품을 닮았다. 성장을 같이 못하지만 자신이 죽음으로써 옆에 있는 나무를 더욱 성장시킨다. 너무나 감동적이다. ” 이렇듯 한국인의 성품을 닮은 소나무는 그래서인지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나무 1위이다. 윤 대표는 “어둠의 뒤안길에서 23년을 살았다. 내 마음을 달래지 못해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무능력하게 할 일 없이 살아야하는가를 고뇌했었다.”며 소나무농장은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준 곳이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주변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윤 대표는 같이 공유하지 않으면 사람이 클 수 없다며 하나의 생명체로서 나무를 소중히 여겨야함을 다시금  강조했다. 윤 대표는 단시간 내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서두르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하며 나무를 키우고 돌보는 일에 양심을 건다면 가르쳐줄 수 있지만 판매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결과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어 성과물이 나올 때까지는 같이 공유하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산림분야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소망을 간직하며 오늘도 소나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가식 없는 행복을 나누고 싶어하는 윤 대표의 하루는 아그파인농장에 가득히 퍼지는 소나무향기에 취해있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2-05-09 12:57:25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